책은 내가 살다 간 가장 효과적인 흔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죠. 그건 생물의 본능이에요. 1차적으론 자기 유전자로 내가 살다간 흔적을 남기려 하죠. 출산을 통해 누구나 DNA로 후손을 남길 수 있지만 그런 방식은 너무나 지역적이고 국소적이죠. 범용적이지 못해요. 시대를 초월하지도 못하구요. 내 자식을 낳았다손 치더라도 내 자식의 머릿속에 전해주는 생활 속 지혜가 세계적으로 전파되지도 않고 먼 후손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도 않잖아요? 말로만 하면 그때만으로 끝나버리니까요. 


책이라는 형태는 달라요. 한번 책이라는 긴 주제로 묶어놓으면 지역과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죠. 가장 효율적인 가성비 갑 형태의 미디어에요. 가격도 얼마 안 하고 얼마나 가볍고 많은 내용을 담아둘 수 있어요? 활자라는 형태 안에 말이에요. 영상이나 이미지로 이 모든 메시지를 나타내려면 품(노력)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죠. 영상이나 이미지는 컨텐츠 생산의 효율이 낮아요. 
텍스트화의 형태만큼 효율 좋은 게 없어요. 생산도 쉽고 전파도 쉬워요. 그걸 압축적으로 담아낸 게 책이잖아요. 요즘엔 책 안에 사진과 영상 링크까지(QR코드 등으로) 다 담을 수 있으니 표현 상 한계도 별로 없어요. 



정식 등록된 책으로 두고두고 인류 유산처럼 남으려면 ISBN을 달고 나와야 해요. ISBN은 책의 출생신고서 같은 거예요. 사람에겐 출생신고서, 책에겐 ISBN이 있는 셈이죠. 책의 출생신고서를 정식으로 달고 나오는 순간 국가적인 재산으로 등록이 돼요. 세계적인 지적 재산으로도 취급을 받게 돼요. ISBN은 국제 표준이거든요. 


일단 정식 ISBN을 받고 나오면 국립중앙도서관이라는 국가 단체에서 의무적으로 책값 정가의 절반 가격에 사가요. 2권을요. (정부단체에서는 항상 대부분 책 정가의 반값에 사 가요. 짜기도 하지. 돈 좀 쓰지…ㅎㅎ. 그래도 그게 어디에요. 매출이 없는 거보단 낫죠.) 

두 권의 신간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요. 그럼 그 두 권은 어떻게 활용될까요? 한 권은  대여용인데 외부 반출이 안 되요. 그 자료가 국가 차원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여해 줬다가 파손이나 분실이 생기면 안 되잖아요. 국가의 가장 중앙이 되는 도서관이라 그 모든 지적 재산을 소중히 관리할 의무를 가지거든요. 





그래서 한 권은 그냥 그 자리에서 당일치기 열람용이고, 나머지 한 권은 완전하게 깨끗한 상태로 지하 6층 서고의 쿨링 시스템(cooling system)에 보관시켜요. 시설 엄청 좋아요. 100년 ~200년 지나도 전혀 손상 없게 보관하죠. 사람 손도 타지 않으니까 전혀 기스도 안 생기고 깨끗하게 보관이 돼요. 


여러분이 잘 모르셔서 그런데, 국립중앙도서관은 사실 어마어마한 규모에요. 해마다 지하를 파고 있어요.  보관 서고를 늘리느라고. 아무런 풍화작용을 타지 않는 그런 상태로 몇 100년간 내 책이 깨끗하게 보관되는 거에요. 국가가 의무적으로 지켜주는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죠. 얼마나 근사한 내 인생의 흔적이에요?^^







생각해보세요. 그게 나중에 3, 4대손 손자손녀가 물을 거 아니에요. “우리 증조부 증조모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라고 할 때, 그냥 엄마한테 전해 듣는 막연한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슨 무슨 일을 하셨다던데…”라는 불확실한 설명보다  훨씬 구체적인 실체가 있잖아요. 그 분이 직접 쓴 자료와 그 분의 생각과 철학이 왜곡 없이 고스란히 다 담겨 있잖아요? 그 책이 자서전 형태가 약간 녹아 있다면 사진도 들어가서 생생한 자료가 있고 모든 것을 숫자와 도표로까지 표시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잖아요? 





요즘엔 시대가 좋아져서 빳빳한 물성을 가진 종이책 형태 말고도 동시에 디지털로도 보관해 줘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실물 책을 디지털라이징(digitalizing)도 해주거든요. 종이책 실물을 가져다가 완전 깨끗하게 스캔해 줘요. (이건 epub 등 전자책과는 다른 디지털 스캔 버전인 거죠.) 최고 사양 스캐너로 쫘악쫘악 스캔해 가지고 아름답게 디지털 버전도 동시에 갖춰 주는 거에요. 그러니 그게 얼마나 평생 가는 기록물이 되겠어요? 


평생이 뭐에요? 디지털 형태의 보관은 지구가 폭파되지 않는 한 거의 영원히 보관될 수 있잖아요? 거의 영원한 타임캡슐처럼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흔적이라고 부를 만 하죠.

종이책만으로도 효과적인 이유가 또 따로 있어요. 책을 보시면은 책이 양면인쇄가 돼 있죠. 거기에 가성비의 비밀이 있어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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